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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모전여전

2월에 내 생일이 있었다. 아들, 며느리, 딸은 멀리 살고 바쁘기도 해 내 생일에 오지를 못했다. 매년 늘 며느리가 차려주는 잔칫상을 받고 온 가족이 모여 기쁨을 나누었다. 그런데 올해는 아무도 오지 못했다. 대신 용돈을 보내줘 위로는 받았지만 왠지 씁쓸하고 외로운 심정이었다.   나에게는 금이야 옥이야 예뻐하는 외손녀 둘이 있다. 어찌나 할미에게 곰살갑게 구는지 두 손녀를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큰손녀가 엄마를 많이 닮았다. 외모도 마음도 많이 닮아서 외손녀를 보면 마치 딸을 보는 것 같아 늘 마음이 흐뭇하고 기뻤다.   큰 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사립 예술대학교(Academy of Art University)에 입학하여 어언 4학년 졸업반이 되었다. 등록금이 엄청 비싸도 딸이 정성껏 학비를 마련해 한 학기만 하면 졸업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졸업식에 참석해 마음껏 축하해 주려고 벼르고 있었다.   어느 날 딸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 xxx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에 승무원으로 취직이 되었어요. 수습 기간을 거쳐 모든 시험에 합격해 졸업식에 다녀왔어요. 2월 초순부터 비행기를 탄다고 해요. 기도 부탁드립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어안이 벙벙했다. 졸업식에 참석하려고 잔뜩 벼르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일까 싶었다. 첫 비행에 오렌지카운티에 온다고 손녀가 전화로 알려주었다. “할머니! 할머니 생신 때 제가 할머니 모시고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 많이 사드릴 테니 기다리세요.”   한편으로는 기특하면서도 고마워 가슴이 뭉클했지만 왜 졸업을 앞두고 갑자기 승무원이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마음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모전여전이다. 피는 못 속이지.’ 하면서 한편으로 빙그레 웃었다.   오래전 딸이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졸업하자마자 샌디에이고에 있는 모 종합병원에서 회계사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죄송해요. 엄마와 상의도 없이 혼자 직장을 바꾸었어요.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루해 사표를 내고 노스웨스트 항공사에 승무원으로 취직했어요. 엄마가 무료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어 기뻐요. 엄마 사랑해요.”   딸은 제 세상 만났다고 온 세계를 누비며 승무원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딸 덕에 무료 비행기를 타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고국에도 일가친척 보러 자주 다녔다. 딸은 세계 각국에 여행을 다니면서 기념품을 꼭 한두 개 사다 주었다. 비행기 탈 때는 늘 무사하기만을 기도했다.   그런데 수년 후에 9·11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혼비백산하여 딸의 생사를 걱정했다. 뉴욕의 쌍둥이 무역센터를 들이받은 비행기가 혹시 딸이 타고 다니는 비행기가 아닐까? 버지니아주의 국방성 펜타곤 건물을 들이받은 비행기에 혹시라도 딸이 타고 있는 건 아닌지? 워싱턴 백악관을 향해 날아가던 비행기를 승객들이 기지를 발휘하여 백악관 도착 전에 자폭하게 한 그 비행기에 혹시 딸이 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있었다. 사고기의 기종이 밝혀질 때까지 초주검이 되어 안절부절 애태우던 그때가 파노라마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딸이 탄 비행기가 아니었다. 그때 초주검이 되어 생명을 십년 감수한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딸은 나의 말을 듣고 승무원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 딸을 닮은 손녀딸이 딸과 같은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으니 내 입에서 ‘모전여전’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저 무사히 자기가 즐기고 있는 승무원 생활을 오래 하도록 기도할 따름이다.   자기가 받은 첫 월급으로 할머니 생신 대접을 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잔뜩 차려진 음식 앞에서 “Happy Birthday to you!” 노래를 불러주니 온 식구가 다 모이지 못했어도 다 모여 축하를 받은 것처럼 흐뭇하고 기뻤다. 승무원 졸업사진을 보여주는데 아시아계는 손녀딸이 유일했다. 기특하고 장한 손녀딸을 힘껏 안아주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어쩌면 ‘모전여전’일까 하면서 웃었다.   둘째 손녀딸도 언니에게 질세라 새크라멘토에서 자동차를 몰고 왔다. 나를 끌어안으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할머니 생신 기념으로 맛있는 밥을 사주고 생일 케이크를 사서 집에서 ‘Happy Birthday to you’를 불러 주었다. 문학 동아리에서도 몇몇 문인들이 맛있는 식사와 생일 케이크로 축하해 주었다. 아들 며느리 딸이 오지 못했어도 두 손녀딸과 친구들 덕분에 훈훈하게 생일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하고 기뻤다. 하나님께서 ‘여호와 이레’로 준비해 주신 축복이라 생각하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김수영 / 수필가수필 모전여전 무료 비행기 승무원 졸업사진 승무원 생활

202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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